[숙종] 장옥정 훗날 이순 왕세자 조선 어린 영조 경종 남인 세종 고려
장옥정
“민유중, 또 민유중!”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어디 한번되보라지.”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숙종..
“아니, 묻어줘라. 보낼 것은 보내줘야지.”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보십시오, 동평당숙. 조선은! 그동안 내가 알아온 조선이 아니였습니다. 신하는 주상전하의위엄과 권위에 조아리는 줄 알았습니다. - 어린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제가, 아직 나이미령하여 불밀한 탓에.. 대소신료들에게 무례를 범하였으니... 부디, 용서를...” - 어린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정1품, 종3품 정7품 말단, 종9품까지! 나를 능멸치않는 신하가 없구나!” - 어린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난 잘못한 거 없소!” - 어린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나의 빈이되면 된다. 나의 빈이되거라. 허면, 넌 미천한 신분이 아니게된다. 그 말은 내가 너의 옷이 되주면 된단말이지. 약속하마. 내가 꼭, 너의 옷이 되어주마.” - 어린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글쎄요.. 헌데, 보송보송한 솜털, 그게 백미였습니다.” - 어린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빨리! 빨리 진맥 좀 해보게! 거기가 아니라, 여기! 여기란 말이다!” - 어린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2회
“왕은 희생하는 자가아니요. 대신, 뭘 줄 수 있는가만 생각하면되지요.”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저..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소?”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1회
“난 평소 대감이 구사하는 야합이 결합한 정치 술수따위 관심없습니다. 왕이 될 자는 왕이 될자의 방식으로 생각할 뿐. 신하들의 정치를 배울 필요가 뭐가있겠습니까.”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1회
“서둘러라, 일각이 여삼추다”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1회
“남인이 아니면 보위조차 제대로 지킬 수도 없다. 짐을 겁박하는겐가?” - 숙종 이순 장옥정 5회
맞습니다. 어차피 내 처지가 좋은 것을 고를 팔자는 못되지요. 해서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 덜 나쁜 것을 골랐을 뿐입니다.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모두 듣거라. 나의, 빈이시다.”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후보가 하나면 달리 고를 것도 없지않습니까. 하여, 제가 후보 한 분을 더 불렀습니다.”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바랄, 망 望 ... 희망.”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헌데, 아바마마. 혹시말입니다.. 소잔, 진심으로 마음에 품은 여인과 혼인해 평생을 함께 해로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그러게말이오. 포부는 크고 현실은 갑갑하고 뭐 이런대서 시름이나 달래고자했겠지, 뭐.”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나의 꿈? 내 꿈은.. 조선의 백성들이 모두 굶주리지않게한는 것.”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난 절대 자신없는 일은 하지않아.”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서인이란 계란껍질안에서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앉은 핵심용수들. 송시열 민유중 김만기들.. 사실 너무 힘에 부친다.”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쓰읍.. 내금위장.”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이게 필요할 것같아서. 그대도, 나도.”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4회
“분명 어디서 본 듯했는데.. 어디서 봤을까..”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하하.. 그야 뭐, 선조취 후허락을 받지요.”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처음엔 옷짓는 여인, 다음엔 서고에서 이번엔 궐에서? 혹여 초간택에 참가한 것인가?”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차라리 법도에 따른다면 참겠습니다. 야합으로 맺어진 인연과 어찌 평생을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부디, 신하된 자의 근심으로 그치시지요. 탐욕은 워낙 화를 부르는지라.”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저 혹시, 질투를하는거요?”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세자빈 자리는 이미 내정되 있다던데.. 조선 세도가 최고의 양대산맥. 김대감댁, 민대감댁 영애들!” - 왕세자 이순 훗날 숙종 장옥정 3회
훗날
만동묘 萬東廟 는 임진왜란 때 지원군을 파견한 명나라 황제 만력제 萬曆帝 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숙종 때 송시열 宋時烈 의 유지에 따라 권상하 등이 충청북도 괴산군 화양동에 지은 사당이었다. 훗날 흥선대원군 때 폐쇄
이순
숙종도 있자나요 사랑꾼 ͡° ͜ʖ ͡° 이순허염이요 까르륵 사실 다조음
백대길 이수,영수군,왕의친형,효장세자이행의백부,삼각관계의주인공,저잣거리의왕자,백만금의양자,남도깨비의양손주,숙빈최씨복순과숙종이순의장자
왕세자
1667년 현종8
1월 왕자 돈 惇;후의 숙종 을 왕세자에 책봉함
2월 일본에서 네덜란드인이 도망해 온 사실을 알림
조선
저 이거 볼때마다 씹덕사 당해요갑자기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와버린 몽숙종이어요
조선 정부는 조선 초기 순심경차관 巡審敬差官 을 울릉도에 파견하였고, 숙종대 이래로는 정기적으로 울릉도 등지에 관리를 파견하는 수토 搜討 제도를 실시했으며, 이는 1895년 동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세종은 평양에 기자 사당을 건립하여 명나라 사신이 참배토록 하였다 X
세종 때는 단군 사당
고려 숙종 때 기자 사당
천문관측의 변화
고구려- 첨성대 기록만 존재
통신- 천문대-첨성대
고려- 사천대, 서운관- 강화도 마니산, 개성 만월대
조선- 관상감 서운관→개칭만 함 , 세종- 간의대, 간의 숙종- 관천대, 창경궁 소간의대 한국사
어질산은 기억이 앙나... 숙종때 사람입니ㄷ.. 그니까 조선
조선의 동전
세종- 조선통보, 조선 첫 동전, 구실 못함
인조- 상평통보 주조
효종- 서울+ 일부 지방 유통
숙종- 전국적 유통 한국사
조선 숙종 1674~1720 때 동전의 전국적 유통 상평통보 → 18세기 초 동전 공급 부족으로 전황 발생→ ?
숙종은 경제보다 정치가 조선 역사에서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둘러댔다...
"한편 조선 영조 30년 1754 에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 재위 1674~1720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같은 문헌 인용.
우리의 조선은 주최적인 역사를 부끄러워 했다. 중국의 개와 돼지만을 생각했다. 그래서 조선은 이 땅의 모든 주체적인 역사책을 금서로 정한 뒤 소지하고 연구하는 것을 반역죄로 다스렸다. 이 역사책들은 한양 서고에 소장돼 오다가
그중에서 조선후기 제일 좋아하는데 그이유가 동이라는 드라마 정말재밌게 봤음 진지희씨 나오는거 한효주랑 그게 숙종과 숙빈최씨의사랑이야긴데 그 드라마가 너무재미있어서 숙종부터 효명세자까지 그냥 통째로 외워버림
18. 촌스럽고 진지한 글씨체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궁서체'는 조선 숙종무렵 확립된 궁중 여인들의 필체입니다. 삐침이 부드럽고 받침을 작게 쓰는 흘림글씨로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것이 특징입니다. 실제 남아있는 글씨를 보면
어린
나는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아기 내인이 되었고,숙종대왕의 대전에 소속되었다.숙종대왕은 어린 나에게 "이 나이의 사대부 집 여자아이들은 어린 티를 면하기 어려운데, '위항여자'라 조숙하여 이런 일까지 다 하는구나"라고 감탄하시었다. -영빈행장 中 -
영조
숙종영조정조,,음ㄴ ㅑ,,,,,,,,,,,,,,,,,,,,아악!!!!!!!!!!!11111악
숙종에게서 받은 칼을 영조에 반환하는 씬의 얼굴 온화해서 모두로부터 풀어진 것 같은 표정. 이런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당신은 한국1의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으로부터 그렇게 생각합니다
///∇///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헌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1728 . 반란에 참여한 세력이 서울과 지방 사대부 가문 출신이며, 청주성을 함락하였다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인좌 등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 세력은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고,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
아 정말 영조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역시 숙종 아들이 맞네 맞아
숙종... 정리하고 나니까 영조가 숙종 아들인게 딱 보이고. 영조 1차 정리하면서 개웃겼다. 합리홬
1728 . 반란에 참여한 세력이 서울과 지방 사대부 가문 출신이며, 청주성을 함락하였다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인좌 등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 세력은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고,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며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
아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양 너무 많아서 하기 싫엌
1757년 여조33
2월 영조비 정성왕후 서씨 사망 1692~
3월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 김씨 사망 1687~
모조리 몰살시키고,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왕 효종 으로 세운 것을 빌미로 현종, 숙종 때까지의 3대를 의미한다.
그 후대인 경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에 관해선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다.
경종은 이복동생인 무수리 출신
경종
1720 숙종46
1월 통신사 홍치중 등이 귀국하여 일본의 정세를 알림
6월 숙종 사망 1661~ , 경종 즉위
10월 삼남 지방의 양전사업이 완료됨 66만 7,800결
태종 - 갑자자? 암튼 최초의 금속활자 만듬 육나 생각남
세종 - 공돌이를 족쳐서 갑인자라는 활자를 만듬 - 너무 잘만들어서 선조때까지 계속 녹여서 다시씀 엌
경종 - 숙종이 만든 인서체의 후기 인서체 만듬 아픈데도 만듬
21회 Daebak에서 Daegil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네요.숙종의 유언과 함께 숙빈에게 맘으로 맹세 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경종의 칼부림에서 아우 연잉군을 지키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형.
남인
아니! 장녹수는 연산군이구
장희빈은 숙종! 장희빈이랑 인현왕후랑 왕다툼해서 서인 남인 싸워가꼬 서인이이겨서 인현왕후가살아남아 장희빈이 훨신 뒤에 사람이야!
남인은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 1623 에 참여하여 광해군, 북인 정권을 몰아냈습니다.
숙종 때 남인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은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분화했습니다. 경신환국 1680년 숙종 6
동인과 서인으로 분화- 이조전랑직 심의겸 VS 김효원 배틀
북인과 남인으로 분화- 정여립 모반사건 기축옥사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 1680 숙종 6 경신환국
서인과 남인간의 예송논쟁- 복제문제 한국사
1694년 숙종20
3월 서인이 재집권하고 남인 몰락 갑술환국
4월 폐비 민씨가 복위되고 왕후 장씨가 희빈으로 강등
9월 수도 방위를 위해 문수산성을 쌓음
세종
세상애 숙종이랑 광개토대왕이랑 세종대왕.....왕이 몇명이조...?
고려
여진의 침입 고려 중기
1104 윤관의 별무반 조직 숙종
1107 윤관 동북9성 축조 예종
1115 금 건국
1126 이자겸의 사대 수락
고려 중기 이후에는 북진 정책이 퇴색하면서 문종 때 한양 명당설 남경 길지설 이 대두하여 동경이 3경에서 제외되고 남경 한양 이 들어갔으며 숙종은 궁궐을 지어 머물기도 하였다
풍수지리설의 영향
북진 정책, 서경길지설, 한양명당설
인조
인조 때 주조된 상평통보는 효종을 거쳐 숙종 때 널리 유통되서 상품 유통을 촉진시키는 데는 크게 기여했으나 전황이라는 사회문제를 유발하였다
최초로 나타난건 1437년 충청도 해미현에서 사는 강제로의 집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해 해괴제를 행한것이며, 중종, 명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때도 닭의 성별이 바뀌는 경우가 등장합니다.
3월
1682년 숙종8
3월 김석주, 군제변통절목 을 올림
5월 이이, 성혼을 문묘에 종사함
8월 통신사 윤지완 등 475명을 일본에 파견함
1705년 숙종31
3월 국왕, 대보단에서 신종의 제사를 지냄
6월 울릉도에 탐사대를 보냄
10월 전국의 호구 137만 1,890호, 613만 8,640명
둘이
맞아옄숙종 버리고 인원왕후 숙빈 둘이 연애해라 ^0^!!!!!!
별로 안 사랑하는데 집안끼리 연으로 억지로 숙종 사랑하다 그리 된거라서 불쌍했다~ 그래서 둘이 환생해 숙종 제대로 엿 먹이고 행복한 길 가는걸 쓰고 싶었다~ 물론 거기엔 동이도 나오고 숙종 마지막 왕비랑 첩도 나오고~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시나라오가 있었다 장희빈이 현재로 환생해 인생역전 되는 시나리오로~ 인현왕후랑 둘이 같이 쌍으로 숙종 엿 먹이고 새로운 길 가는 시나리오를 상상 했었다 난 사실 인현왕후도 불쌍해 보였거든 사실 정략결혼의 희생양 이였으니까~
울릉도에
1693년 숙종19
8월 제주도에 천연두가 퍼져 1,950명 사망
11월 울릉도에 일본인의 출입을 엄히 단속함
예종
지방제도 중앙제도 감목양마법 칠대실록
문종- 문36912 공동 불기흥
3심제 9재학당 12공도 공음전시과 불교장려 기인선상제 흥왕사
숙종- 벌써화남?
별무반 서적포 화폐 남경건설
예종- 국보칠양청 구혜감무
국학 보문각 칠재 양현고 청연각
10월
1712년 숙종38
2월 청나라에서 장백산 경계 조사의 문서를 보내옴
5월 일본으로의 서적 수출을 엄금함
10월 북한산성 공사를 끝냄
숙종
아는 것 숙종이 여자편력이 존나 화려했다...
초반 촬영때인데 역모를 노리는 동평군과 역모? 어차피 왕은 나야~ 해맑게 웃는 몽숙종 넘 귀엽다 특히 목소리가 피디님 이 영상에서 뽀송뽀송 향기가 납니다
숙종 뺨치게 찌질한 왕입니다
당도님 께서 신청해주신 첫번째 커미션, 드라마 대박 의 이인좌, 숙종 완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아아아 알아알아 ㄱ유아인 사극에 최적화된 연기톤,,,, 아악 그 머지 처음 궁에서 만날때 김태희 지나가는데 손목 화악 잡는것도 개설램,,, 힝 사랑꾼 숙종 최고..
예아 숙종 예아👍
초조대장경이 조판된 후 선종과 숙종 사이에 대각국사 의천이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송ᆞ거란ᆞ일본 등에서 주석서를 모아 4천여 권의 교장 속장경 을 조판하였으나 선종계열은 포함되지 않았다
숙종 얘 진짜 뭐야? 어이가 없네
숙종 때 왕권이 강했던 이유가...말하자면 정통성 끝판왕이라서 그렇다는 게 일반적으로 드는 이유 같은데 '그때 사람들은 정통성이 정말 중요했나보다' 싶으면서도 바로 납득은 안 된다. 반정 아닌 장자승계라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지 의구심이 무럭무럭.
설민석쌤 강의 듣는데 겁나 웃김 숙종을 장희빈 남편이라고 불러
1674년, 아바마마 현종 께서 승하하시고 전하 숙종 께서 즉위하면서 나는 왕비가 되었고, 1676년. 정식으로 왕비의 책명을 받았다.
숙종 때 세자 이름이 윤이었구나
조태오..숙종 ? 도 있었다..
아 여차저차 숙종 끝냈다 숙종 좋게 봤는데 아니네
숙종 또또켕
숙종 인간성 진짜 왜 이따궄
망할 숙종... 환국을 왜케 많이 한 거야 아니 서인이 문제네 서인...ㅂㄷㅂㄷ
숙종이 키웠다는 고양이는 치즈태비였던 모양이다
헤헿 숙종은 사랑이야 어몽식 필모 최애야... 사실 안본게 더 많음
나 어릴 때 사씨남정기 읽으면서 숙종 나쁜넘!!!이라고 무지 욕했는데..지금은 그냥 헤헤 순전하 헤헤♡..
덤으로 숙종실록에는 최유연 崔有淵 이라는 사람은 9살 때 집안의 계집종이 순화군에게 죄를 지었는데 순화군이 성을 내며 가장을 잡아가버리자 그는 부모에게도 묻지 않고 스스로 순화군에게 나가 빌고 빌어서 순화군이 화를
덤으로 숙종실록에는 최유연 崔有淵 이라는 사람은 9살 때 집안의 계집종이 순화군에게 죄를 지었는데 순화군이 성을 내며 가장을 잡아가버리자 그는 부모에게도 묻지 않고 스스로 순화군에게 나가 빌고 빌어서 순화군이 화를 풀어 가장을 풀어주어서 효자로
숙종에 대해 썼는데 사실 정치만 알아봐서 경제는 1도 안 알아봄
참고로 숙종이면 장희빈해줘야됨 나라 꺵판이다!
토도로키... 바쿠고... 데쿠... 아니면 타케다... 각시탈...? 숙종...? 사도세자
“너, 니 할아버지를 따라 숙종대왕릉에 갔다지?”
'대박'은 숙종이 죽고 좀 느슨해진기분이야...
대박 안보던 사이에
숙종이 죽고
연잉군이 왕좌에
진구에게 수염이라니..
PRP드디어 900찍었습니다 숙종
숙종은 1720년에 죽었답니다...* ?
? 대박 언제 숙종죽었냐
추임새인줄알앗어 대박; 숙종늬 언제죽엇긔?
난 숙종 다이키라이........
탕평 스키라니 그럼 설마 숙종도 스키?